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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4474 배움공동체 강의를 들으며
[기본]배움의 공동체,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직무
dr***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실감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학생들이 즐겁고 흥미있는 수업이 이루어져야할 것입니다. 본교에서도 협동학습 및 배움공동체 수업을 강조하여 처음에는 실행보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강의를 듣고 수업방법을 알게 되어 유익했습니다. 2학기부터는 좀더 배움공동체의 수업이 되도록 노력해 볼 것입니다.
4473 인상깊은 연수
[기본]배움의 공동체,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직무
ha***

'교사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이 나에게 많은 반성과 연민을 남기는 말입니다. 매일 행복하고 보람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교사가 뿌린 만큼 거둘 수 있는 것이라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사랑을 심을 수 있는 배움의 공동체가 되도록 많이 노력 하고 싶습니다.
4472 힐링이 되는 연수
[학교혁신]학교를 변화시키는 초등사례-직무
ka***

혁신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힘든 근무중에 힐링도 되었답니다.

4471 비고츠키 가 지향했던 바
비고츠키의 인간철학과 또 하나의 심리학-직무
ac***

그는 온전히 있는 그대로, 보자는 차원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씌여져서 배워왔고, 그러게 가르치고 있다
무언가에 둘러싸인 것을 우리는 자각하기 힘들다.

그점에서 그것을 일깨워주는 죽비다.
4470 교사의 내면
교사의 내면을 세우는 수업 성찰-직무
ac***

듣고 싶었던 '내면',누구에게나 있지만,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더이상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강건한 내면을 스스로 만들자.
4469 만약, 내가 기획한 바대로 수업이 될까?
교사의 내면을 세우는 수업 성찰-직무
ac***

교사가 상정한 기대수준이 문제다.
아이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 오해도 하고 이해도 하고, 오개념도 갖는다. 만약 기획한바대로, 디자인 하대로 안된다면, 그건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어찌 계획대로 착착착 움직이길 바라는가. 아이들은 움직여주지 않는다.다만, 스스로 땡기면, 움직일뿐이다.
교사는 그 움직임을 간파하고, 이끌어 주면 된다고 본다.
4468 그래 맞아, 한가지라도 제대로
교사의 내면을 세우는 수업 성찰-직무
ac***

많은 경험을 해도, 남는 추억은 단 하나, 소수이다.
그리고 기억이 오래간다. 맛난 음식은 유명한 음식점이 아니라, 노동을 끝내고 먹었던 새참거리이다. 이처럼, 학습의 한 장면, 깊게 빠져들게 하는 나름의 '공포'수준의 체득할 수 있게 했던 그 바가 필요한 것이다.

4467 수업은 뭘까?
교사의 내면을 세우는 수업 성찰-직무
ac***

일단 교사에게 주어진 업이다. 천형이다. 여기에 전문성이라는 잣대는 버리자. 아이들앞에 서있는 실존으로서, 학생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며 살아내야 한다.
단순히 절차적인 수업스킬을 넘어서서, 이게 전문성이라면,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이러한 절차를 전문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전문성은 미세한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감을 나누는 것이다. 대신 교사가 사전에 실행중에 수시로 상황배치하는 전폭적인 탐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다. 무수한 시간을 마주해야 하는 천형 . 그래서, 교사는 사람이 아니라, 실시간 언제든 살아내야 할 파트너이다. 이 파트너는 항상 스탠바이해야 한다. 가능할까? 그래서, 감을 유지해야 한다. 감은 현장에서 체득할 수 밖에 없고 언술화하더라도, 탱자가 될 것이다.
4466 보람있는 연수
[기본]배움의 공동체,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직무
le***

배움의 공동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연수였고, 수업에 대해 다시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하는 연수였다. 학생 개개인의 배움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하나하나 존중하는 노력,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배움의 공동체의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4465 수업은 마라톤과 같다.
교사의 내면을 세우는 수업 성찰-직무
pa***

마라톤 대회에 무모한 도전장을 내밀었던 경험이 있다. '조금 빨리 걸으면 되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대회 일주일을 앞두고 중앙공원을 세 바퀴씩 돌기로 마음 먹었다. 참 쉬운 판단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는 틈바구니에서 나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허술한 아마추어일 뿐이었다. 다들 자신의 체력에 적절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며 건강달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생각없이 뛰다가 걷기를 오락가락 하며 잔뜩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옆 사람과 속도를 맞춰보려고 하다가 오히려 힘에 부치는 연습시간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마라톤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수업에 수업친구가 있어 도움을 주듯이 말이다. 가까운 이웃을 불러 같이 연습을 하니 좀더 의욕이 생기고 자신감도 붙었다. 그리고 절대로 남들 하듯 따라하면 안 되는 것도 비슷한 점이다.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부단한 노력과 시간을 내어주는 것 뿐이다. 또한 목표한 지점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게 되는 운동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지 말고 결코 되돌아 가서는 안 되는 코스인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 수업이라는 마라톤은 계속 되고 있다. 이제 함께 달려갈 수업친구를 찾고 아이들의 삶 속으로 한결같이 걸어 들어가야 한다. 비록 우승자는 아닐지라도 완주자로서의 기쁨은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업성찰 연수는 평소 수업마라톤으로 목마른 나에게 내면의 갈증을 풀어준 참 고마운 시간이었다.